백미주가 파랗게 타오르는 눈으로 남편을 쏘아보았다. 연무룡과 자신의 혼사를 정한 사람은 연씨 일족의 큰 어른이었다. 혼인 전날까지 연무룡과 자신은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이였다. 혹시 연무룡은 자신과의 결혼 생활을 후회한다는 걸 말하고 있는 것일까? 속으로 이가 갈리는 동시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는 연씨 일족을 위해 이렇게 애를 쓰는데……. 당신은 어떻게…….’ 의동생 부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남궁벽이 얼른 말을 돌렸다. “허허! 두 분 모두 일리 있는 말이오. 아우님, 허면 이러면 어떻겠는가?” “어떻게요?” “양가의 아이들이 서로를 마음에 들어 한다면 혼인시키자는 게지. 그거야말로 아우님과 제수씨의 바람이 모두 담긴 거라고 보는데. 어떤가?” “그런 거라면 저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때는 소제가 형님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겠습니다.” “호호! 제가 봐도 명판결이시네요. 아우님, 그게 좋겠지요?” 되묻는 장하은의 말에 백미주는 분루를 삼키고 물러서야 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었지만 속은 쓰라렸다. 결국 혼약을 하지 않겠다는 소리인 까닭이다. “그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뭐하지만 아주버님, 부탁 올릴 말씀이 있어요.” 이어진 백미주의 말에 남궁벽이 부드럽게 웃으며 시선을 마주했다.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 무백이를 남궁세가에서 지도해 주십사 해서요.” “큰조카를요?” 남궁벽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연무룡을 바라보았다. 연씨 일족에게도 상승의 무공이 있는데 굳이 자신에게 보내려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게다가 그런 문제는 와룡장의 장주가 결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연속해서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연무룡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남궁세가와 형님께 폐가 되지 않는다면 저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알겠네.” 남궁벽은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롤베팅 연무룡이 저런 부탁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연씨 일족의 구천검은 자신도 궁금하던 참이다. 와룡장의 장자인 무백이를 남궁세가에 맡긴다는 것은 두 가문의 무공을 교류하자는 뜻이기도 하니 손해 볼 일은 아니었다. “정말 그래도 괜찮겠는가?” 워낙 중대한 사안인지라 남궁벽은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양쪽 집안의 비전(秘傳)은 피차 전하지 않는다 해도 가볍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 더구나 이 경우 와룡장보다는 남궁세가에 유리한 상황이었다. 연무백은 이제 열네 살의 아이인 반면 자신은 하나를 보면 열을 추론해 낼 수 있는 초극의 고수이니 말이다. “예, 무당산으로 가실 때 함께 데리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나 서둘러야 할 이유라도 있는가?”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연무백의 말에 남궁벽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백미주가 애증 어린 눈으로 연무룡을 힐끗 바라보았다. ‘이이가 무슨 꿍꿍이지?’ 혼약은 나서서 깨더니 그래도 양심이 있는지 무백이는 남궁세가에 보내겠단다. 홧김에 남편을 통하지 않고 직접 부탁한 것이었지만, 남편의 곧은 성격에 반대하지 않는 게 이상했다. *** 저녁에 와룡장이 발칵 뒤집어졌다. 뒤늦게 양쪽 집안의 어른들이 연적하와 남궁연의 실종을 알게 된 때문이다. 경계를 서고 있던 무사들에게는 감봉에 벌까지 내려졌다. 곧이어 와룡장과 창천대의 무사들이 와룡장 인근 십 리를 쥐 잡듯이 뒤지고 다녔다. 결국 두 아이는 마을의 시장통에서 발견되었다. 와룡장으로 보내진 두 아이는 연무룡과 남궁벽의 앞에 불려 나왔다. 크게 놀란 남궁벽이 호되게 야단을 쳤다. “이 녀석들! 어른들이 장원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냐!” “…….” 놀란 연적하의 머리가 자라처럼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남궁연은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남궁벽을 응시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오히려 화가 난 것 같았다.